신동이었던 카탈루냐의 작곡가 이사크 알베니스는 7살의 나이에 파리 음악원 피아노 클래스의 입학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가 그를 가로막았죠. 어린 대가에게 이것이 최선의 결정이었을지 우리가 판단하긴 어렵습니다. 9살 때까지 그는 아버지의 보호 아래 국제적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고, 10대 초기에는 자취를 감추려 하기도 했습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기 전에 쿠바에 밀항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립니다. 후에 그는 라이프치히와 브뤼셀에서 공부했는데, 부다페스트에서 리스트에게 영향을 받은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죠. 그는 바흐와 라모, 쇼팽에게도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인생 후반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민족주의 열풍에 힘입어 스페인적인 경향을 띱니다. Alicia de Larrocha가 1972년 녹음한 알베니스의 작품 'Iberia(이베리아)'는 완벽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뉴욕 타임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던 걸 생각해보면 Larrocha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죠. "이사크 알베니스의 '이베리아'는 세 개의 손을 가진 훌륭한 피아니스트에게 무기한의 연습 기간을 주고 속도를 두 배로 느리게 해서 연주하도록 하면 간단해요. 하지만 그런 재능을 지닌 피아니스트는 극소수죠." 알베니스처럼 카탈루냐 출신인 Alicia de Larrocha는 'Suite española(스페인 모음곡)'와 'Navarra(나바라)'도 이 앨범에 함께 실었습니다. '스페인 모음곡'은 1886년 스페인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왕을 위해 작곡했으며, 스페인의 다양한 지역과 음악적 전통을 떠올리게 하죠. '나바라'는 알베니스가 작곡을 시작했지만, 그의 조수이자 이전 제자였던 Déodat de Séverac이 1912년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