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은 우리가 익히 아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가 아닌, 그의 숨은 면모를 소개합니다. 오랜 무대 활동에서 은퇴하고 내면의 기독교 신앙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1861년, 헝가리 작곡가 리스트는 로마로 이주해 보조 성직 단계에 해당하는 소품 서품을 받으며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의 음악 역시 변화를 맞이합니다. 리스트 하면 떠오르는 화려하고 눈부신 피아노곡들과는 대조적으로, 내면의 깊은 성찰을 담은 음악이 탄생하죠.
이 후기 작품들 중 다수는 지금도 자주 연주되지는 않습니다. 합창과 피아노를 위한 '십자가의 길(Via Crucis)'이 그 대표적인 예죠. 이 곡은 예수가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무덤에 묻히기까지, 14처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음악적 여정입니다. 음악에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바흐의 코랄은 물론, 불길하게 울리는 소리와 불안정한 화성을 담은 리스트 특유의 피아노 구절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Leif Ove Andsnes)의 명료한 연주부터 소규모 합창단의 투명한 음색에 이르기까지, 연주자들은 이 모든 것을 애정을 담아 표현합니다.
안스네스는 리스트가 '십자가의 길'보다 훨씬 이전에 쓴 피아노 독주 작품인 여섯 곡의 '위안(Consolations)', 그리고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Harmonies poétiques et religieuses)' 중 두 곡으로 앨범을 마무리합니다. 리스트의 가장 빛나는 음악으로 꼽히는 이 곡들은 '십자가의 길'의 먹구름처럼 짙은 분위기를 잔잔하게 감싸는 부드러운 종결부 역할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