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라단조

Op. 48

음악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어떻게 다루어 왔을까요? 클래식 음악에서 그 질문에 답해주는 음악은 단연 레퀴엠입니다. 레퀴엠을 남긴 여러 작곡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과 그 이후를 다루었습니다. 그 안에는 슬픔에 대한 애도부터 최후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둘러싼 여러 장면이 고루 포함돼 있습니다. Gabriel Fauré가 'Requiem(레퀴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안식입니다. 보통 레퀴엠에서 가장 극적인 효과를 만드는 부분은 최후의 심판에 해당하는 'Dies Irae(진노의 날)'이지만, Fauré는 그런 강렬함을 덜어냅니다. 대신, 그 자리를 한층 서정적인 'Pie Jesu(자비로운 예수)'와 'In Paradisum(천국에서)' 같은 음악으로 채워 넣죠. 그렇게 완성된 그의 '레퀴엠'에는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이가 심판 없이 그저 영원한 안식 속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는 듯합니다. Fauré가 이 곡을 작곡한 1880년대 후반은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곡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도 아버지의 뒤를 따랐습니다. 어머니의 사망 이후, 그는 다시 한번 곡을 고치며 그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가다듬습니다. Fauré의 '레퀴엠'에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나 두려움에 압도되는 순간은 없지만, 이 평온한 음악에는 더욱 거대한 힘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누군가의 안식을 소망하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소중한 이가 마침내 천국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이 '레퀴엠'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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