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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이지
소개
존 케이지(John Cage)는 고전 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음향 세계를 창조한 작곡가입니다. 그는 침묵과 소음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신념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4분 33초(4'33")'입니다. 이 곡이 1952년 초연됐을 때 관객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4분 33초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 시간 동안 케이지는 청중이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일상 속 모든 순간이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지금은 20세기 음악의 혁신가로 칭송받지만, 처음부터 케이지가 작곡가의 길을 꿈꾼 건 아닙니다. 191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인문학을 더 좋아했고, 신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죠. 학교 운영 방식에 불만을 느껴 중퇴한 뒤 유럽 여행 중 첫 작곡을 하게 됐고, 미국으로 돌아와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케이지가 고안한 여러 기법은 현대 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대표적으로 '우연성의 음악'을 들 수 있죠. 그 이전까지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가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연주자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규칙이 오히려 더 인위적이라고 생각한 케이지는 악보에 미리 지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요소를 음악에 집어넣었습니다. 우연성을 강조한 그의 대표작 '상상 속의 풍경 4번(Imaginary Landscape No. 4)'에서는 악기 대신 여러 대의 라디오를 틀어 음악을 만듭니다. 무대 위에서 지휘자가 신호를 주면, 연주자들은 각자 라디오 주파수를 실시간으로 조정하죠. 우연성을 더한 이 독창적인 작품은 연주할 때마다 다른 사운드로 완성됩니다. 또 케이지는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만들어 그 낯선 소리를 음악에 활용했습니다. 피아노 현 사이에 금속, 나무 등의 물체를 넣은 이 피아노는 해머가 현을 때릴 때마다 독특한 소리가 납니다. 1948년 완성한 '소나타와 간주곡(Sonatas and Interludes)'은 프리페어드 피아노의 정수를 담은 작품으로, 케이지는 이 음악을 통해 피아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케이지의 혁신적인 작업 방식은 당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1960년대에 활약한 급진적인 전위 예술 그룹 플럭서스의 핵심 멤버였습니다. 플럭서스에서 활동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케이지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죠. 케이지가 남긴 위대한 유산은 음악에 그치지 않고, 현대 예술 전반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