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불어봤을 악기 리코더. 오늘날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사실 리코더의 전성기는 바로크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 리코더는 합주와 독주에서 두루 사용됐으며, 바흐(Bach), 헨델(Handel)과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리코더를 위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고전파와 낭만파 시대에 음량이 큰 오보에와 플루트가 주목받으면서 이 악기는 잊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세기 들어 시대 음악이 부흥하며 리코더는 재발견됩니다.
특히 네덜란드 출신의 리코더 연주자 프란스 브뤼헨(Frans Brüggen)은 리코더의 예술적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이바지한 인물입니다. 브뤼헨은 다양한 시대 악기를 수집하고, 당대 연주 기법을 철저히 분석해 고음악 부흥에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더 학구적인 시대 연주를 위해 1680년대부터 1740년대까지 제작된 리코더를 모아 방대한 컬렉션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브뤼헨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악기들은 고요한 잠에 빠졌습니다.
브뤼헨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네덜란드의 리코디스트 루시 홀쉬(Lucie Horsch)가 이 특별한 악기들을 다시 깨웠습니다. 그는 브뤼헨의 미망인에게 허락을 받아 연주 기회를 얻었고, 각 리코더의 소리와 개성에 맞도록 레퍼토리를 선별해 이 앨범을 제작했습니다. 제작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보존 문제 때문에 악기별로 두 번씩만 녹음할 수 있었죠. 그래서 이 앨범 속 연주는 라이브에 가깝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홀쉬는 뛰어난 감각으로 악기의 섬세한 뉘앙스를 훌륭히 살려냈습니다. 리코더는 빠른 속도에서 음정이 흔들리기 쉬운 악기지만, 그는 복잡한 패시지에서도 정교한 테크닉을 발휘합니다.
또한 브뤼헨이 창립한 18세기 오케스트라(Orchestra of the 18th Century)가 함께해 이 앨범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멤버가 시대 악기를 사용하는 이 오케스트라는 정제된 소리로 홀쉬의 미세한 표현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홀쉬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은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귀한 시대 악기로 만들어낸 고풍스러운 음색에 푹 빠져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