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랄로

소개

1823년 태어난 Édouard Lalo는 그야말로 코즈모폴리턴이었습니다. 프랑스 릴 태생이지만 스페인 혈통이었고, 독일 정통 음악을 추구했죠. 그는 이러한 자신의 성향을 음악에 거침없이 드러냈습니다. 'Symphonie Espagnole(스페인 교향곡)', 'Fantaisie Norvégienne(노르웨이 환상곡)', 'Concerto Russe(러시아 협주곡)' 등 잘 알려진 바이올린 협주곡들이 이국적인 소재를 자유롭게 다루던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작곡가로서 성공을 거둔 건 아닙니다. 40대까지 그가 발표한 작품은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 50대가 되었을 무렵인 1870년대에 들어서야 동료 음악가들의 도움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1875년 바이올리니스트 Pablo de Sarasate가 초연한 '스페인 교향곡'이 그의 첫 성공작이죠. 60대였던 1888년에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한 'Le Roi d’Ys(이스의 왕)'는 1년 동안 100회 이상이나 공연됐을 만큼 인기였습니다. Lalo에게 실내악은 매우 중요한 장르입니다. Armingaud Quartet 창립 멤버였던 그는 1850년대에 현악 4중주를 적극적으로 소개했습니다. 또한 독일 음악의 영향을 받은 실내악 작품을 다수 남겼는데, 'String Quartet(현악 4중주), Op.19'과 Schumann, Mendelssohn의 영향을 받은 'Trio No. 1(3중주 1번), Op. 7' 등이 대표적입니다.